2014년 12월 3일 수요일

2. 님프와 사티로스, 그리고 분리불안

[그림 1] 님프(Nymph)와 사티로스(Satyrs), 부그로 작,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위 그림은 님프와 사티로스라는 그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님프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합니다. 음악이 있는 곳에 모여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서 지냅니다. 그런데 님프들은 순결을 목숨같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만일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겁탈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순결을 잃으면 님프들은 화살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님프들은 춤과 노래를 하다가도 남자가 나타나면 도망쳐야 했습니다. 

사티로스들은 상체는 인간, 하체는 짐승의 형태인 반인반수입니다. 한 사티로스가 님프를 겁탈하려고 님프의 숙소에 침범했습니다. 님프들은 이를 발견하고 사티로스를 혼내주었습니다. 

위 그림은 님프들이 사티로스를 혼내주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4명의 님프 중 한 명만 얼굴이 보입니다.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청순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입니다. 어쩌면 이 님프의 얼굴은 화가가 사랑하던 여인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그림은 미국 메사츄세츠 주의 세인트 윌리암스타운이라는 곳에 위치한 스털링 프랜시스 클라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입니다. 제가 여행가서 본 그림은 아닙니다. 제주도에 있는 그리스 로마관이라는 곳에 놀러갔다가 전시되어 있는 복사판 그림을 봤습니다. 

제주도의 그리스 로마관에서 이것 저것 감상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저의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이 그림이 저의 관심을 끈 이유는 뻔합니다. 초등학생 자식이 둘이나 있는 40대 젊잖은 남자이지만, 아직 남성으로써 혈기가 왕성한가 봅니다. 아직도 나체의 아름다운 여인들의 그림을 보면 눈길이 훽 돌아가곤 합니다. 저는 이런 저 자신을 볼 때 쪽팔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건강한 남자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합니다.  

저는 옆에 있는 와이프 눈치가 보여서인지 고상하게 얘기했습니다. 
"참 이그림을 보니, 중세 때나 지금이나 여자들 얼굴에 대한 기준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그 말에 대한 와이프의 대답은 걸작이었습니다. 
"왜. 요렇게 예쁜 아가씨가 머리잡아당겨주면서 유혹하면 좋겠나보지?"

울 와이프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제 마음을 꽤뜷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보다 제 마음을 훨씬 더 직관력있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티로스(Satyrs)는 다른 이름으로 판(Pan)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불안장애의 일종인 공황장애를 Panic disorder 라고 합니다. 판의 이름을 따서 질환명을 붙인 것입니다. 사티로스가 낮잠을 자고 있다가 방해를 받으면 엄청난 소리로 부르짖는데, 그 소리에 놀라서 깜짝 놀라는 증상과 같다고 해서, 공황장애를 Panic disorder 라고 이름붙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공황장애 얘기를 잠시 했으면 합니다. 동물이나 인간은 생명에 위급한 상황이 되면 싸우거나 도망쳐야 (fight or flight)합니다. 도망치거나 싸우기 위해서는 교감신경이 한꺼번에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 때 가슴은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며, 식은땀이 나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쭈빗 서기도 합니다. 생명에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이런 반응이 나타나야 싸우거나 도망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뭔가 고장이 나서, 생명에 위급한 상황이 아닌 아무 때나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공황장애라고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공황장애의 근본적인 원인은 분리 불안에 있습니다. 분리 불안은 어린 아이가 어머니와 떨어질 때 느끼는 불안입니다. 분리 불안이 심해지면 초등학생이 학교를 안가겠다고 우기는 학교 거부증이 나타납니다. 학교가 있는 시간 동안 "비록 어머니가 내 눈 앞에 안보이지만, 집에 돌아가면 언제든지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하고 확신을 가진 아이들은 분리 불안이 안생깁니다. "내가 안보는 사이 어머니가 어디론가 사라질까" 두려워 하는 마음이 분리 불안입니다. 

분리 불안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불안입니다.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는 금지된 열매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은 "창조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신으로부터의 분리, 부모님으로부터의 분리가 불안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잘 상징하는 이야기인 듯 합니다. 

직장인들은 항상 분리 불안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쫒겨날까 두렵습니다. 저 역시 회사 생활을 할 때 상사의 눈에 들고 인정받고자 밤 늦게까지 퇴근을 미루고 몸을 던져 일을 했습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지만, 그 마음의 깊숙한 곳에는 분리불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사에게 한소리 들으면 한 일주일 의기소침해지고, 칭찬 한번 받으면 한 일주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인정받는 재미에 밤늦게 가정 생활 반납하고 일하는 생활을 힘든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을 나오고 나서 보니 그 곳은 넓고 넓은 세상 중에 일부인 쬐그마한 사회일 뿐이었습니다. 

분리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분리 불안은 우리를 목적없이 일하게 만들곤 합니다. 회사를 나오는 것이 답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학교에 가 있더라도 부모님은 나를 버리고 떠나지 않듯이, 내가 지킬 것은 지키면서 의연하게 일하더라도 직장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어쩜 그런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일 수도 있습니다. 

http://www.clarkart.edu/Collection/6158


1. 파리스의 선택, 그리고 우리들의 선택

[그림 1] 파리스의 심판, 루벤스 작

영국 런던, National Gallery 에 있는 루벤스의 작품,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그림입니다.
여기서 나체의 세 여인은 제우스의 부인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입니다. 오른 쪽에 앉아있는 복이 많은 심판관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입니다.

누가 누구인지는 그림속에 숨어있는 풍부한 상징으로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여신은 아테나입니다.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이기도 하고 전쟁의 여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테나 뒷편에 투구와 메두사로 장식한 방패가 놓여 있습니다. 나뭇가지 위에 있는 올빼미는 지혜의 상징입니다. 오른 쪽에 있는 여신은 헤라입니다. 헤라의 발밑에 헤라의 상징인 공작새가 있습니다. 가운데 있는 여신이 아프로디테입니다. 아프로디테 뒤에는 아들인 에로스(큐피드)가 있습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미르미돈의 영웅 펠레우수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이 결혼식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불화의 여신이니 신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한 것입니다. 화가 난 에리스는 불화의 여신인만큼 불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 라고 씌어있는 사과를 연회장에 던집니다. 그리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은 그 사과를 서로 가지겠다고 싸움이 났습니다. 결국 세 여신은 제우스에게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심판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를 심판하면 제앙이 온다는 사실을 아는 노련한 제우스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철없이 혈기만 넘치는 파리스에게 심판을 떠 넘깁니다. 노련한 제우스는 여성들의 미모에 대한 경쟁에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엄청난 분란을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이지요.

철없는 파리스는 이 선택의 기회를 덥썩 물어버립니다. 자신 앞에 여신들을 세워놓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니 연상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룸쌀롱에서 아가씨들을 줄 세워놓고 가장 이쁜 아가씨들을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어쩌면 이런 장면은 시대를 초월하는 철없는 남자들의 판타지인 듯 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룸쌀롱에서 그 판타지가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루벤스 같은 화가들이 그 판타지를 예술로 구체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파리스 앞에 선 여신들은 자신을 선택하면 댓가를 주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아테나는 "지혜"를 주겠다고 하고, 헤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을 주겠다고 합니다.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합니다.

얼마전 네셔널 갤러리에 장인어른과 아들을 데리고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70세이신 장인어른에게 여쭤 보았습니다. "아버님같으면 지혜, 권력, 아름다운 여인 중에 뭘 선택하시겠어요?" 장인어른은 권력을 선택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뭘 선택할래?" 아들은 지혜를 선택했습니다.

저도 40대 중반 인생을 살아보니, 권력이나 지혜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젊은 시절에는 미모만 눈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른 답을 생각하면서도, 막상 선택의 순간이 되면 미모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재앙을 가져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림 2] 파리스와 헬레나, 영화 트로이 장면

결국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게 되고, 그 댓가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 왕국의 왕비인 헬레나를 파리스에게 줍니다. 헬레나의 미모에 정신 못차리게 빠져든 파리스는 남의 여인, 그것도 강대국인 스파르타 왕국의 왕비인 헬레나를 몰레 데리고 트로이로 돌아옵니다.

부인을 빼앗긴 스파르타 왕은 복수를 하고자 트로이를 공격하게 되고,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결과는 트로이 제국의 멸망으로 참혹하게 끝이 납니다. 이 장면은 영화 트로이에서 잘 나타나게 됩니다.

[그림 3] 전두엽과 변연계

파리스의 선택은 신경해부학적으로 해석하면, 전두엽과 변연계의 싸움입니다. 대뇌의 안쪽에 위치한 변연계는 인간이 아닌 파충류, 양서류에서도 잘 발달되어 있는 부분인데, 식욕, 성욕, 감정 등의 기능을 담당합니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 보다 근본적인 기능입니다. 반면 대뇌의 겉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대뇌피질은 유인원 이상에서 발달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대뇌피질 중 이마 부분에 해당되는 전두엽은 인간에서 가장 크게 발달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전두엽의 기능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인지기능, 이성적 사고 기능입니다.

모든 동물에서 잘 발달되어 있는 변연계와 인간만 발달되어 있는 전두엽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생명의 훨씬 근원인 변연계가 이기는 것은 어쩌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적으로 권력이나 지혜가 더 좋은 것이라고 정답을 알지만 막상 선택을 하라고 하면 미모를 선택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젊은 시절, 예쁘고 가난한 여자와 좀 못생겼지만 돈많은 여자 중 누구를 선택하면 좋을지 고민을 합니다. 농담삼아 "좀 못 생겼지만 돈많은 여자를 선택하고 대신 예쁜 여자를 애인으로 삼아 바람피우면 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선택의 상황에서는 미모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후회합니다. 오해하실까봐 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제 와이프가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제 와이프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그리스 신화는 이런 지혜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줍니다. 역대 많은 왕조들은 여성의 미모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에 놀아나면서 정사를 망쳤다고 합니다. 현종 역시 몰라서 그랬을리야 있겠습니까? 전두엽이 변연계에게 졌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으로 안된다고 아무리 생각하면서도 유혹을 당하면 그 상황에서 이기기 어려운 것이 인간입니다. 신화는 그 댓가가 엄청난 재앙으로 온다고 얘기합니다.

저를 포함한 40대 철없는 남성들, 우리 항상 조심하도록 합시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면 재앙이 온다는 것을 명심하십시다.